접어-든 계절, 접힌 감각을 펼쳐놓기: 진종환의 회화와 계절감  


글 | 콘노 유키


계절은 늘 ‘이제’의 감각에서부터 시작한다. 해가 길어진 것을 보고 겨울도 ‘이제’ 지나가는 것을 알고, 화창한 날에 꽃이 핀 모습을 보고 ‘이제’ 봄이 왔다고 말한다. 계절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뉘지만, 우리는 이제 끝나거나 이제 시작되는, 이전과 이후의 시간축이 만나는 지점에서 계절을 감각한다. 이를테면 봄이니까 봄을 감각하고, 여름이니까 여름을 감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가 경험적으로 또는 감각적으로 알고 있는 계절이란, 사실은 서로 침범하듯 이어져 있는 이음매와도 같다. 생각해 보니, ‘계절(季節)’을 한자로 쓸 때 ‘마디 절(節)’이 들어간다. 마디는 부분과 부분을 잇는다. 사계절이라는 단어는 계절이 네 개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년 단위로 돌아가는 마디가 네 개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에서는 ‘사계절절(四季折々)’이라는 말을 쓴다. 이때 ‘절’은 ‘절기’를 의미하는 ‘節’이 아닌, ‘꺾는다’ 또는 ‘접는다’를 의미하는 한자 ‘折’을 쓴다. 의미는 사실 둘 다 비슷하지만, 마디라는 단어가 담아내지 못하는 뉘앙스가 여기에 있다. ‘折’이라는 한자가 들어가면서 흐르는 시간에 입체감이, 두께가 생기기 시작한다. 꽃향기와 풀냄새, 따가운 햇살, 가랑잎이 굴러다니는 소리, 그리고 눈의 침묵 등등, 우리가 보내는 시간 안에, 감각된 계절이 접어-들기 시작한다. 

진종환의 회화 작업에서 계절감은, ‘절’—節이자 折인—의 감각을 통해서 담긴다. 계절이 변화하는 풍경을 관찰하며 감지한 시각 외의 감각을 시각화한 작업을 보면, 물감의 농후함이 만든 깊이와 색상의 레이어가 보인다. 평면인 동시에 깊이를 가진 그의 화면에는 시각 외의 감각이 같이 개입된다. 진종환은 본인이 경험한 자연 풍경에서 작업을 출발한다. 강원도의 여름 밤하늘이나 서울에서 첫눈이 내린 자연 속에서 느낀, 시각이 담을 수 없는 감각을 작가는 추상회화 형식을 통해서 보여준다. 우리의 감각은 사진을 볼 때보다 자연 속에 있을 때, 하나씩 떼어내기가 어려운 종합적인 것으로 경험된다. 계절감은 더욱 그렇다. 내가 있는 곳에서 이전과 감각으로 나에게 전달된다. 그러데이션과도 같은 이행 단계는 서로가 얽혀 있거나 마디처럼 붙어 있는 동시에, 어느 한쪽으로도 수렴되지 않지만 이어져 있는 접힌 면을 가진다. 진종환의 회화 화면은 추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감각들이 서로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진 채 있다는 점에서 꽤 구체적이다. 계절감은 이전과 이후 사이에서, 둘 중 하나로도 수렴되지 않은 채, 화면 안에 접어-들어 있다. 바꿔 말하자면, 이 접어-든 감각을 펼친 것이 진종환이라는 작가의 회화 작업이고, 이 접어-든 감각을 펼치는 것이 감상자의 시선이 된다. 

파이프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Afterglow》의 대표작인 < 사라진 계절 속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2025)를 보면, 작가의 관심사가 무엇과 무엇의 사이 영역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라진 계절은 다음 계절의 출발인 것처럼, 그 둘이 만나는 경계면으로써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감각, 즉 순환성에 대한 생각은 진종환의 작가 노트의 한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해가 떠오르고, 해가 저물고, 달이 떠오르고, 달이 떠오르지 않는 밤, 수많은 별 앞에 서 있다.(작가 노트)”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순환성이란 계절이라는 넓은 단위뿐만 아니라 하루라는 짧은 단위의 시간성과도 긴밀하다는 점이다. 뭉뚱그려 ‘빛’이라는 말로 수렴할 수 없는 변화가 아침과 낮, 저녁과 밤에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작가가 본 빛, 그 빛이 있는 곳은 날씨나 시간대마다 다르게 감각된다. 바람이 불고, 공기의 따스함과 차가움, 멀리와 가까이서 들리는 소리들이 그때마다 다른 면모를 가진다. 진종환의 작업을 보면 1)수풀이나 구름,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화면과 그 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흐름이 보이는데, 작가에게 빛이란 종합적인 감각을 하나로 응축하는 동시에 ‘풀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진종환에게 빛은 화면 안에 응축과 해체를 이끄는 요소로 작용한다. 덩어리처럼 다가오는 수풀이나 구름, 밤하늘이 빛의 존재와 그 움직임을 통해서 순간적으로 다각도로, 입체감 있게 보이게 된다. 물론 그에게 빛이란 일차적으로 태양이나 별들이다. 그러나 회화 작업을 하는 작가에게 빛이란, 감각들을 하나로 응축시키는 대상인 동시에 평평한 화면 안에 계절감이 스며들도록 하는, 말하자면 움트는 곳을 만들어내는 촉각적인 감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진종환이 계절감을 평면 회화로 담아낼 때, 여기에는 접어-들고 풀어-보는 과정이 작용하고 있다. 평면은 접혀 있던 절기를, 그사이의 변화와 이동을 포착하여 펼쳐놓는다. 접혀 있던 한쪽이 다른 한쪽과 완전히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든 잔여처럼 간직되는, 사이 영역에 걸쳐 있는 것으로 펼쳐진다. 진종환이 계절감에 시선을 돌리고 회화 작업으로 보여줄 때, 그것은 하나의 평면 상태부터 시작한다. 그 계절에 접어-든다는 것은 (작가가 실제로 봤듯) 단풍잎과 쌓인 눈의 조합처럼 서로 다른 계절이 만났다는 의미만 가리키지 않는다. 있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시간적 흐름과 전이가 그때 보고 느꼈던 감흥과 함께 화면으로/에 기록되고 펼쳐진다. ‘되’-돌아보거나, ‘다시’ 떠올리는 일은 사라짐 속 잔여의 감각 속에 빠져드는 행위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계절에 접어-든다. 회화를 잔여의 감각이 응축된 곳으로 본다면, 회화를 보고 감상자도 접혀 있던 감각을 다시 펼칠 수 있을 것이다. 펼쳐진 화면에, 작가가 감각한 바가 담겨 있다. 펼쳐진 화면에, 보는 사람의 감각이 접어-들 수 있다. 그것은 물질적으로 접혀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펼쳐진 화면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회화 작업은 ‘이제’ 펼쳐진 화면인 동시에 ‘이제’ 펼쳐질 화면이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진종환의 작품은 ‘절’—節이자 折인—의 감각을 화면으로/에 담아 포착하고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감상자에게도 선사하고 있다. 


 1) 이는 2020년대쯤에 발표한 (2021)와 (2022)부터 시작하여 이번 개인전에 소개되는 < 잎의 움직임 >(2025)의 세 점에 이르기까지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