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nter of a long time-긴 시간의 겨울에서
겨울을 덮었던 눈이 녹고 나면, 땅에서는 싹이 돋아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알린다. 눈이 녹는 과정은 계절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자각하게 한다. 눈은 녹아 물이 되어 싹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스스로 발아할 수 있는 힘을 전하고, 우리는 그 서툰 초록빛을 통해 봄이 왔음을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이 녹는 장면을 굳이 목격하지 않고, 그저 사라진 흔적에서 녹았음을 유추하고 이를 사실로써 받아들인다.
서술된 것과 같은 접근 방식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방식, 즉 창의성과 상상력으로부터 비롯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추론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아이러니하게도 창의성과 상상력을 제한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눈이 녹았음을 확신하는 순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질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종환 작가는 녹은 눈의 과정과 결과를 추론적으로 알고 있지만, 직접 목격하지 못했던(않았던) 상황을 추적해가며 질문을 지속한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진종환 작가는 목격하지 않았지만 변화한(혹은 변화하는) 형태, 즉 비가시적인 것에 대한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한다. 변화는 비정형적이고 예측 불가한 변수를 상징하는데, 여기에 포함되는 비정형적인 요소들은 그것이 불완전하거나 불안한 상황에서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작은 단서들을 탐색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변화는 급변하는 환경과 이에 따른 감각적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담보하고 있는데, 진종환 작가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회화적 실험으로써 접근한다.
진종환 작가의 개인전 《The winter of a long time-긴 시간의 겨울에서》는 지난 겨울의 변화와 사건들을 감각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새삼스레 피부로 전해져 온 기후변화, 자욱하게 안개가 펼쳐진 긴 시간의 새벽, 햇빛과 온도 간의 불협화음 등의 비가시적인 사건들은 그가 목격하지 않았음에도 상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였고, 이는 작가의 고유한 예술적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계기로 자리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진종환 작가는 그의 회화를 통해 목격하지 못한 현상이나 변화를 상상력과 질문으로써 가시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예술적 과정을 통해 우리가 무시하거나 간과했던 일상의 순간과 사소한 것들에 대한 변수적 가능성을 분석한다. 비록 눈에 띄지 않는, 비가시적인 현상들이지만,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경험과 인식의 메커니즘 속에 깊숙이 뿌리를 두고 있는 요소들이다. 환언하자면 진종환 작가의 회화는 비정형적인 변수로부터 비롯되어 닫히는 추론적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욱 풍부한 창의성과 상상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예술적 가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글 | 박천
비영리전시공간 싹 디렉터